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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훈민정음, 누가 만들었을까?

by Suyeon79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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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종대왕상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세종 대에 수많은 업적을 일궜지만 그 모든 업적을 합한다 해도 훈민정음 창제에 필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은 누가 만들었으며 언제부터 연구되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학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실록을 자세히 보면 이에 대한 대답은 명백합니다. 흔히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공동으로 만든 것으로 이해되거나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고 세종이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은 세종이 거의 홀로 만든 것이며 홀로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훈민정음 창제 작업은 공식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이유로 집현전 학자들을 투입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학자들 중 일부는 세종에게 도움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세종의 질문에 대답하는 정도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정인지 등의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이 무슨 의도로 언어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공식적으로 공표할 때까지 그들은 왕이 스스로 문자를 만들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작업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까지 문자 창제에 관한 언급은 실록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임금의 공식적인 말과 행동은 모두 기록되었으며 공식적인 사안이 전혀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실제로 실록에는 무기 제작과 같은 극비 사항까지도 기록된 것을 감안하면 훈민정음 창제는 극비리에 진행된 국가적인 사업도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즉, 훈민정음 창제는 그야말로 세종이 홀로 진행한 극비였던 것입니다.

 

극비 미션, 훈민정음

세종은 왜 이 일을 홀로 극비리에 진행했을까요? 그 답은 훈민정음 공표에 반대했던 최만리의 상소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최만리는 상소문에서 새 문자를 만들어 단독으로 쓴다는 말이 중국에 흘러들어가면 비난을 받게 될 것이며 중화의 문자인 한자를 대신하여 훈민정음을 쓰면 스스로 오랑캐가 된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설총의 이두로써 가능한 일을 굳이 훈민정음으로 대체할 필요는 없으며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취지 중 하나인 훈민정음의 보급이 억울한 백성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가 옳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 상소 내용의 골자는 결국 '사대(事大)'와 '권위' 였습니다. 당시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을 삶의 지표로 삼으며 동시에 대국인 중국을 섬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철칙은 그들이 스스로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 내면에는 학자 또는 선비로서 갖는 권위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문자는 자신들만이 누리는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평민은 그저 이우 정도나 알면 되는, 알고 있는 무식쟁이였고 천민은 그것조차도 모르는 짐승같은 존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 권위와 자부심의 밑바탕에는 한자가 있었고 그들은 그들만의 문자와 학문을 자신들의 권위, 권력의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평민이나 천민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훈민정음의 등장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많은 학문서들이 훈민정음으로 번역되어 평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누리던 학문적 권위를 잃게 될 것이며 그와 더불어 그들의 권력 상당 부분까지 위협받게 될 것이라 우려했던 것입니다. 세종은 그러한 현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 위한 공식적인 회의를 진행한다면 시작도 전에 엄청난 반대에 부딪힐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였던 것입니다. 만약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이 그 일을 강하게 추진한다면 대신들은 중국의 힘을 빌려 세종을 협박했을 수도 있습니다. 세종은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간파했기에 직접 그리고 비밀리에 창제 작업을 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세종이 홀로 훈민정음을 창제한 근거는 또 있습니다. 세종 대에 쓰인 모든 책에는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훈민정음만은 "임금이 친히 언문 28글자를 만들었다."라고 실록에 쓰여 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취지와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훈민정음」에도 '세종어제(世宗御製)' 라고 표현하여 세종이 직접 훈민정음을 만들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세종은 언어학에 대한 조예가 매우 깊었으며 당대 최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세종은 최만리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를 일고 그를 불러 "네가 언어학을 아느냐?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되느냐?"라고 물으며 최만리의 언어학에 대한 무지함을 꼬집었다고 합니다. 또 세종은 최만리에게 "내가 언어학을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라고 말하며 언어학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세종이 이 세상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인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임금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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