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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15

선조 대, 난세의 영웅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왜국이 조선을 침범한 사건을 일컬으며 1차를 임진왜란, 2차를 정유재란이라고 하며 통상적으론 1,2차를 합해 임진왜란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선조 대의 조선은 약 2백년 간 거의 전쟁을 치른 적이 없었기 떄문에 불시의 전쟁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왜국의 상황은 조선과 달랐으니 당시의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랜 시간 지속되던 전국시대를 종결하고 하나의 나라로 통일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시대를 통해 이미 전쟁 수행 능력을 확보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오랜 전쟁을 통해 병법, 무술, 축성술, 해운술 등을 정비했고 서양에서 건너온 새로운 무기였던 조총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도 갖추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계란.. 2023. 4. 18.
연산군 폭정의 결정판, 무오사화 · 갑자사화 집권 초기 연산군 연산군은 성종과 숙의 윤 씨의 아들로 윤 씨가 왕비에 책봉되자 연산군에 책봉되었습니다. 1479년 윤 씨가 폐비가 된 후 1483년 여덟 살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되었고 1494년 성종이 죽자 열아홉에 조선 제10대 왕이 되었습니다. 연산군은 19세에 섭정(攝政: 임금이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 임금을 도와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받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왕위에 오를 때가 12월이었으니 며칠만 지나면 성년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1494년 12월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4년 뒤인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폭군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즉위 초에는 성종 대의 평화로운 모습이 계속 이어졌고 인재가 많았던 덕에 질서가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 4.. 2023. 4. 16.
폐비의 아들 · 희대의 폭군, 연산 왕자 융, 어떻게 세자가 되었나 성종은 도학을 숭상하고 자신을 스스로 군자(君子: 유교 사회에서 덕성과 교양을 겸비한 인격자)라 칭했으나 한편으로는 호기(豪氣: 호방하고 씩씩한 기운)가 넘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12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30명에 달하는 자식을 얻었는데 그런 호방한 기운이 불행의 씨앗을 낳았으니 그것은 바로 희대의 폭군, 연산이었습니다. 한 때 성종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왕비 윤 씨는 성종이 다른 여인들과 보내는 일이 많아지자 왕 주변의 후궁들을 독살할 목적으로 비상(砒霜: 비석을 태우고 승화시켜서 만든 서리 같은 결정체의 독약)을 숨겼다가 발각되어 이 일로 빈으로 강등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윤 씨는 성종의 배려로 강등되지는 않았지만 왕을 가까이하는 여인들에 대한 그녀의 질투는.. 2023. 4. 15.
조선의 태평성대, 성종시대 성종 초기, 할머니의 섭정 성종 시대는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성종의 정치력에 힘입어 조정이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종은 치세에 매우 능했는데 권신을 견제하기 위해서 사림 세력을 끌어들여 권력의 균형을 이룸과 동시에 유교 사상을 더욱 정착시켜 왕도 정치를 실현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로 모든 기초를 완성했다는 뜻의 성종(成宗)이라는 묘호를 얻었습니다. 그만큼 조선 개국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열어갔습니다. 성종은 1457년 세조의 큰아들 의경 세자와 세자빈 한확의 딸 한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혈이다.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 의경 세자가 죽고 세조의 손에 의해 키워졌는데 인품이 뛰어나고 활쏘기, 서화 등에도 능하여 세조의 총애..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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