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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15

비극적인 父子의 이야기, 영조와 사도세자 완벽주의자 영조 노론과 소론 사이의 치열한 당쟁 속에서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며 가까스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1694년 숙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무수리 출신 화경 숙빈 소생으로 이름은 금, 이후 연잉군은 봉해졌으며 숙종의 명에 따라 대리청정하였고 경종 1년에는 왕세제에 책봉되었습니다. 영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자신을 곤경에 몰아넣고 수많은 대신들을 죽게 했던 신임사화(신축년과 임인년 사이에 일어난 사화로 왕위계승 문제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 간의 싸움으로 소론이 실권을 잡게 됨)에 대하여 책임을 추궁했습니다. 영조는 소론의 영수(領袖: 여러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인 김일경, 남인의 목호룡 등 신임사화를 일으킨 대신들을 숙청한 다음 소론 대신들을 내몰고 노론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였으니 이것.. 2023. 4. 21.
숙종과 희빈 장씨, 그리고 그의 아들 경종 숙종은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 세 명의 왕비를 맞이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아들을 한 명도 얻지 못했습니다. 숙종에게 아들을 안겨준 이는 천비 소생의 두 후궁이었는데 나인(궁궐 안에서 왕과 왕비를 가까이 모시는 내명부를 통틀어 이르는 말) 출신의 희빈 장씨와 무수리(나인들에게 세숫물을 떠다 받치는 종) 출신의 숙빈 최씨가 그들이었습니다.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은 왕자 윤이고, 숙빈 최씨가 낳은 아들은 왕자 금이었습니다. 그 둘의 나이 차이는 여섯 살이었습니다. 왕자 윤은 14세 되는 1701년 친모인 희빈 장씨를 잃었습니다. 아버지 숙종이 어머니에게 사사(賜死: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던 일)하는 것을 본 이후 그때부터 병을 얻었습니다. 이때 윤의 나이는 14세였는데 이 사건 이후 줄곧 병환.. 2023. 4. 20.
비운의 왕 인조의 등극, 조선의 끝없는 변란 인조는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광해군의 서조카, 인목대비의 서손자입니다. 1623년 3월 서인 세력과 함께 무력으로 난을 일으켜 조선 제16대 왕에 올랐으니 그때 그의 나이 29세였습니다. 인조는 등극 초기 광해군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조정과 사회를 안정시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자 했으나 시작이 순탄하지 못했던 만큼 안팎으로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괄의 '삼일 천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서인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것과 같은 반란이 또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염려하는 동시에 와해되어 각자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역모설을 퍼뜨려서 반대파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계파 간의 갈등이 빚어낸 결과물이 바로 '이괄의 난' 입니다.. 2023. 4. 19.
광해군 시대에 핀 문화의 꽃, 허균과 허준 혁명을 꿈꾼 사상가, 허균 허균은 문장가로 이름 날렸던 허엽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예조판서를 지낸 김광철의 딸로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허엽이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갔으며 이에 허균은 이복형제들 사이에서 서얼(庶孼: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과 그 자손)들이 겪는 고통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이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에서 서얼 출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게 된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허균의 집안 자체는 대단한 문장가로서 명망이 높았는데 그의 이복형 허성은 임진왜란 직전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동복누이 허난설헌은 한국 여류 문학의 대표자 격으로 뛰어난 문장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문장가 집안의 출신답게 허균 역시 5세 때부터 글을 읽고 9세 때 작시..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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