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45 비운의 왕 인조의 등극, 조선의 끝없는 변란 인조는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광해군의 서조카, 인목대비의 서손자입니다. 1623년 3월 서인 세력과 함께 무력으로 난을 일으켜 조선 제16대 왕에 올랐으니 그때 그의 나이 29세였습니다. 인조는 등극 초기 광해군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조정과 사회를 안정시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자 했으나 시작이 순탄하지 못했던 만큼 안팎으로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괄의 '삼일 천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서인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것과 같은 반란이 또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염려하는 동시에 와해되어 각자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역모설을 퍼뜨려서 반대파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계파 간의 갈등이 빚어낸 결과물이 바로 '이괄의 난' 입니다.. 2023. 4. 19. 광해군 시대에 핀 문화의 꽃, 허균과 허준 혁명을 꿈꾼 사상가, 허균 허균은 문장가로 이름 날렸던 허엽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예조판서를 지낸 김광철의 딸로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허엽이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갔으며 이에 허균은 이복형제들 사이에서 서얼(庶孼: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과 그 자손)들이 겪는 고통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이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에서 서얼 출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게 된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허균의 집안 자체는 대단한 문장가로서 명망이 높았는데 그의 이복형 허성은 임진왜란 직전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동복누이 허난설헌은 한국 여류 문학의 대표자 격으로 뛰어난 문장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문장가 집안의 출신답게 허균 역시 5세 때부터 글을 읽고 9세 때 작시.. 2023. 4. 19. 선조 대, 난세의 영웅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왜국이 조선을 침범한 사건을 일컬으며 1차를 임진왜란, 2차를 정유재란이라고 하며 통상적으론 1,2차를 합해 임진왜란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선조 대의 조선은 약 2백년 간 거의 전쟁을 치른 적이 없었기 떄문에 불시의 전쟁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왜국의 상황은 조선과 달랐으니 당시의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랜 시간 지속되던 전국시대를 종결하고 하나의 나라로 통일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시대를 통해 이미 전쟁 수행 능력을 확보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오랜 전쟁을 통해 병법, 무술, 축성술, 해운술 등을 정비했고 서양에서 건너온 새로운 무기였던 조총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도 갖추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계란.. 2023. 4. 18. 연산군 폭정의 결정판, 무오사화 · 갑자사화 집권 초기 연산군 연산군은 성종과 숙의 윤 씨의 아들로 윤 씨가 왕비에 책봉되자 연산군에 책봉되었습니다. 1479년 윤 씨가 폐비가 된 후 1483년 여덟 살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되었고 1494년 성종이 죽자 열아홉에 조선 제10대 왕이 되었습니다. 연산군은 19세에 섭정(攝政: 임금이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 임금을 도와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받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왕위에 오를 때가 12월이었으니 며칠만 지나면 성년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1494년 12월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4년 뒤인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폭군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즉위 초에는 성종 대의 평화로운 모습이 계속 이어졌고 인재가 많았던 덕에 질서가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 4.. 2023. 4. 16. 이전 1 ··· 32 33 34 35 36 3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