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종 시대는 후기 조선 사회의 붕괴 조짐이 드러난 시기였습니다. 안으로는 순조 대부터 시작된 세도정치로 과거제도 및 국가 재정의 기본인 삼정(三政: 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 등으로 나라가 혼란해졌고 재위 15년 동안 9년에 걸쳐 수재(水災: 장마나 홍수로 인한 재난)가 발생하는 등 민중의 어려움이 계속되었습니다. 내우외환(內憂外患: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 그치지 않아 어린 나이에 즉위한 헌종으로서는 치세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종의 즉위와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헌종은 순조의 손자이며 효명세자와 신정왕후의 아들입니다. 1827년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고 1830년 순조 30년에 왕세손에 책봉, 1834년 순조가 죽자 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린 나이를 이유로 순조의 비인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됩니다. 수렴청정을 시작한 순원왕후 김씨는 홍경래의 난 수습 및 민심 안정책으로 서북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관리로 등용할 것을 지시합니다. 또 순종 대부터 시작된 천주교도 탄압은 헌종 대에도 이어졌는데 기해년에 일어난 사건은 '기해박해'라고 부릅니다. 이 사건으로 조선에 들어와 있던 앙베르, 샤스탕 등 프랑스 신부와 유진길 등 천주교 신자가 다수 처형되었습니다. 헌종은 천주교를 금한다는 척사윤음(斥邪綸音: 서양의 종교를 배척하기 위하여 전국의 백성에게 내린 임금의 말)을 반포하여 백성들에게 천주교를 금지하는 교서를 내립니다.
헌종의 친정(親政)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다가 헌종이 15세가 되던 해인 1841년 헌종이 친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자 안동 김씨의 세력은 위축되면서 풍양 조씨의 세력이 우세해졌습니다. 풍양 조씨는 헌종의 모후 조대비의 문중으로 조대비의 부친인 조만영이 그 우두머리였습니다. 조만영은 헌종을 보호하는 한편 그의 동생 조인영 등 그 가족을 요직에 앉히고 세도를 확립했습니다. 그 후5, 6년간 풍양조씨가 세력을 유지하다가 1846년 조만영의 죽음 이후로 정권은 다시 안동 김씨 가문으로 넘어갔습니다. 안동 김씨에게 정권을 빼앗기기 전 풍양 조씨는 민생문제와 정치 혁신은 뒷전이고 안동 김씨와의 권력 싸움에만 급급하였고 그 결과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이어졌고 결국 삼정의 문란(삼정은 전정, 군정, 환곡을 말하는 것으로서 국가 재정의 수입원이었으나, 세도 정치로 정치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삼정이 문란해짐)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헌종 대 두 번의 모반사건(謀反事件)
헌종 2년 남응중의 모반과 헌종 10년 민진용의 옥이 그것입니다. 헌종 2년 충청도로 내려가 있던 남응중은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의 손자를 왕으로 추대하고 청주성을 점령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지방 이속(吏屬: 각 관아에 둔 벼슬아치)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남응중 등은 능지처참을 당하고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헌종 10년에 있었던 민진용의 역모는 안동 김씨의 세도가 풍양 조씨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의원 출신인 민진용은 그의 뛰어난 의술로 이원덕 등을 포섭하여 정조의 아우 은언군의 손자 원경을 왕으로 추대하기로 계획합니다. 그러나 이 역모 역시 사전에 발각되어 관련 주모자는 모두 능지처참 당하고 은언군의 손자 원경은 사사(賜死: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던 일)됩니다. 별다른 정치적 세력 없는 중인이나 몰락 양반이 일으킨 이 두 차례의 모반(謀反: 반란을 꾀함) 사건은 당시의 왕권이나 정치권이 누구나 넘볼 수 있을 만큼 우스워진 상황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헌종 대 후기의 정세
헌종 12년 6월에는 프랑스 제독이 천주교 탄압을 이유로 군함을 이끌로 충청도로 들어와 왕에게 국서를 전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조정은 긴장 상태가 됩니다. 이에 앞서 5월에는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체포되어 나라에서 금한 서양의 종교를 퍼뜨리고 국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효수형(梟首刑: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아 뭇사람에게 보게 하던 형벌)에 처해집니다. 조정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 해 청나라를 통해 프랑스에 답신을 보내는데 이것이 우리나라가 서양에 보낸 최초의 외교문서가 입니다. 헌종 14년에는 이양선(異樣船: 모양이 다른 배라는 뜻으로, 다른 나라의 배를 이르는 말)이 경상, 전라, 황해, 강원 등지에 빈번히 출몰하면서 민심이 크게 동요되었습니다. 그 당시 국제 또는 주변 정세에 어두웠던 조정에서는 이양선의 잦은 출몰이나 위협에 별다른 방도를 세우지도 못한 채 각각의 세력 장악에만 급급하였습니다.
14년의 재위 기간에 6년의 수렴청정 기간을 제외하면 9년여의 짧은 친정 기간을 가졌던 헌종은 그 기간마저도 세도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헌종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가문의 권력 투쟁에 휘말리다 국내외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정치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민생 안정책도 세우지 못한 채 1849년 23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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