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한자를 어려워하고 특히 요즘의 어린 학생들은 한자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감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한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날마다 무심코 쓰는 말을 살펴보면 뜻밖에 많은 한자어를 만나게 된다. 원래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지만 점점 성어가 되어 본래의 뜻이 잊힌 말도 있고 유래를 알고 나면 훨씬 가깝게 다가오는 말도 있다. 자주 쓰면서도 의미도 모르고 쓰는 말도 있고 아예 다른 의미로 잘못 이해하고 쓰는 말도 적지 않다. 이렇게 자주 쓰면서도 본래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던 생활 속의 재미있는 한자어를 살펴보며 한자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자.
산수갑산일까, 삼수갑산일까
많은 사람들이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이라는 의미로 '산수갑산(山水甲山)'이라고 쓰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삼수갑산(三水甲山)'이 옳은 표현이다. 삼수갑산은 함경도의 맨 꼭대기, 백두산 아래에 있는 삼수와 갑산이라는 곳으로 조선 시대에 죄인을 귀양 보내던 매우 춥고 험난한 고장이다. 삼수(三水)는 함경도 북서쪽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며 갑산(甲山)도 삼수 못지 않게 춥고 궁벽한 곳으로 모두 한번 들어가면 살아 돌아오기 힘든 지역이었다. 그러니 삼수갑산이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경치 좋은 곳'이 아닌 '교통이 매우 불편한 오지, 몹시 어려운 지경'을 이르는 말이다.
흥청망청 쓰다 보면
흥청망청(興淸亡淸) 쓴다는 것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마구 낭비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연산군 때 생겼다. 연산군은 자신을 낳고 쫓겨난 폐비 윤씨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관련자들은 마구잡이로 죽였다. 그의 행태는 날이 갈수록 난폭해졌고 대신들을 전국 팔도로 보내 예쁜 여인들은 뽑아 궁궐에 살게 하였다. 이들 중 특히 용모가 좋고 재주가 뛰어난 여인들을 가려 '흥청(맑은 기운을 일으키다)'이라고 불렀다. 연산군은 매일 천 명에 가까운 흥청을 불러 잔치를 열었으며 여기서 '흥청거린다'는 말이 나왔다. 연산군은 결국 중조반정으로 쫓겨나 강화도에서 생을 마감했고 '흥청망청'이란 말은 '흥청 때문에 연산군이 망했다' 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며 성어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이비야가 잡아 갈라
어린아이가 울면 어른들이 "이비야가 잡아간다"라며 겁을 주기도 하고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못 하게 할 때 "이비!"라고 하기도 한다. '이비' 또는 '이비야'는 '어른이 아이를 야단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말이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 남원성과 전주성 전투가 치열했고 당시 왜병들은 자신의 공로를 뽐내기 위해 조선인들만 보면 코와 귀를 베어 소금에 절인 후 상자에 담아 일본으로 가져갔다. 지금도 일본에는 그 당시 가져갔던 조선인들의 코와 귀를 묻은 이총(耳塚, 귀무덤)과 비총(鼻塚, 코무덤)이 남아 있다. 왜병들은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산 사람의 코까지도 베어가는 잔인함을 보였는데 그래서 당시 전라도 사람들은 왜병을 '코 베어 가고 귀 잘라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비야(耳鼻爺)'라고 불렀다. '이'는 귀, '비'는 코, '야'는 아비, 남자를 뜻한다. 이런 이유로 '이비야가 온다'고 하면 울던 아이도 무서워 울음을 그쳤고 이비야는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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