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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의 아들 · 희대의 폭군, 연산 왕자 융, 어떻게 세자가 되었나 성종은 도학을 숭상하고 자신을 스스로 군자(君子: 유교 사회에서 덕성과 교양을 겸비한 인격자)라 칭했으나 한편으로는 호기(豪氣: 호방하고 씩씩한 기운)가 넘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12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30명에 달하는 자식을 얻었는데 그런 호방한 기운이 불행의 씨앗을 낳았으니 그것은 바로 희대의 폭군, 연산이었습니다. 한 때 성종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왕비 윤 씨는 성종이 다른 여인들과 보내는 일이 많아지자 왕 주변의 후궁들을 독살할 목적으로 비상(砒霜: 비석을 태우고 승화시켜서 만든 서리 같은 결정체의 독약)을 숨겼다가 발각되어 이 일로 빈으로 강등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윤 씨는 성종의 배려로 강등되지는 않았지만 왕을 가까이하는 여인들에 대한 그녀의 질투는.. 2023. 4. 15.
조선의 태평성대, 성종시대 성종 초기, 할머니의 섭정 성종 시대는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성종의 정치력에 힘입어 조정이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종은 치세에 매우 능했는데 권신을 견제하기 위해서 사림 세력을 끌어들여 권력의 균형을 이룸과 동시에 유교 사상을 더욱 정착시켜 왕도 정치를 실현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로 모든 기초를 완성했다는 뜻의 성종(成宗)이라는 묘호를 얻었습니다. 그만큼 조선 개국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열어갔습니다. 성종은 1457년 세조의 큰아들 의경 세자와 세자빈 한확의 딸 한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혈이다.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 의경 세자가 죽고 세조의 손에 의해 키워졌는데 인품이 뛰어나고 활쏘기, 서화 등에도 능하여 세조의 총애.. 2023. 4. 14.
세종이 사랑한 천재 과학자, 장영실 천재 과학자, 장영실 세종시대 과학혁명을 주도한 인물은 단연 장영실이었습니다. 세종의 과학에 대한 열정이 아무리 대단했다고 한들 장영실이 없었다면 그 열정을 현실화시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장영실의 태생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데 조선시대가 사대부 중심의 사회였던 만큼 천민 출신이었던 장영실에 대한 기록이 전무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귀화한 아버지와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동래현에서 관노 생활을 하던 중 그 재주가 출중하여 천거되었습니다. 「세종실록」에 여진족에서 붙잡혀 있던 중국의 기술자들이 조선으로 탈출하여 조정의 대접을 받고 관기(官妓)를 아내로 삼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영실의 아버지도 그런 부류의 인물이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2023. 4. 13.
세종의 쌍두마차, 황희와 맹사성 세종의 쌍두마차 조선사를 통틀어 황희와 맹사성에 비견할 만한 재상이 또 있을까 싶어질 정도로 이들은 세종대에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융성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세종 시대는 세종이라는 마부가 황희와 맹사성이라는 두 마리 말을 끌고 달려가는 쌍두마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철저한 선비이자 뛰어난 재상, 관리의 모범이었다. 황희는 1363년 개성에서 태어나 14세에 복안궁녹사가 되었고 21세에 사미시, 23세에 진사시, 27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성균관학록에 제수(除授: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림)되었습니다. 맹사성은 충청도 온양 출신으로 역시 27세 되던 해에 처음으로 문과 을과에 급제해 관직에 올랐습니다. 맹사성은 황희보다 세 살이 많고 관직에도 3년 먼저 올랐습니다. 황희는 1392년 고.. 2023.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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