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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3

세종이 사랑한 천재 과학자, 장영실 천재 과학자, 장영실 세종시대 과학혁명을 주도한 인물은 단연 장영실이었습니다. 세종의 과학에 대한 열정이 아무리 대단했다고 한들 장영실이 없었다면 그 열정을 현실화시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장영실의 태생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데 조선시대가 사대부 중심의 사회였던 만큼 천민 출신이었던 장영실에 대한 기록이 전무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귀화한 아버지와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동래현에서 관노 생활을 하던 중 그 재주가 출중하여 천거되었습니다. 「세종실록」에 여진족에서 붙잡혀 있던 중국의 기술자들이 조선으로 탈출하여 조정의 대접을 받고 관기(官妓)를 아내로 삼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영실의 아버지도 그런 부류의 인물이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2023. 4. 13.
세종의 쌍두마차, 황희와 맹사성 세종의 쌍두마차 조선사를 통틀어 황희와 맹사성에 비견할 만한 재상이 또 있을까 싶어질 정도로 이들은 세종대에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융성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세종 시대는 세종이라는 마부가 황희와 맹사성이라는 두 마리 말을 끌고 달려가는 쌍두마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철저한 선비이자 뛰어난 재상, 관리의 모범이었다. 황희는 1363년 개성에서 태어나 14세에 복안궁녹사가 되었고 21세에 사미시, 23세에 진사시, 27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성균관학록에 제수(除授: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림)되었습니다. 맹사성은 충청도 온양 출신으로 역시 27세 되던 해에 처음으로 문과 을과에 급제해 관직에 올랐습니다. 맹사성은 황희보다 세 살이 많고 관직에도 3년 먼저 올랐습니다. 황희는 1392년 고.. 2023. 4. 13.
훈민정음, 누가 만들었을까?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세종 대에 수많은 업적을 일궜지만 그 모든 업적을 합한다 해도 훈민정음 창제에 필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은 누가 만들었으며 언제부터 연구되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학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실록을 자세히 보면 이에 대한 대답은 명백합니다. 흔히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공동으로 만든 것으로 이해되거나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고 세종이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은 세종이 거의 홀로 만든 것이며 홀로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훈민정음 창제 작업은 공식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이유로 집현전 학자들을 투입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학자들 중 일부는 세종에게 도움을 주었을 수 있습니..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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